[리뷰] 달이랑 놀다가 달 안에 잠들다

2015.10.15

[위드인뉴스 강주영]

 

커다란 움직임 없이 작고, 정갈하게

<회오리>가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난 간 후 아직도 잔잔한 여운이 남아 있는 어느 저녁, 국립무용단의 또 다른 작품 <완월>을 만났다. ‘해오름’보다 조금 작은 ‘달오름’에서 만난 신세계, 독특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분장부터 인상적이다.
어둡고 검은 무대 위를 검은 장막이 둘러 쳐 있다. (언젠가는 풀어질 것처럼 대충 둘러진 그 천은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무대 중앙 뒤 쪽, 두 명의 무용수가 손을 맞잡고 서 있다. 멀리서 보고는 남자들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 보니 여성들이다. 머리를 모두 말아 수영모 같은 모자 안에 넣었다. 그리고 정갈하게 일자로 붙은 앞머리.

 

공연이 시작 되자, 둘이 ‘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짝의 한 쪽 팔을 잡고 서서 돌면, 그 짝은 몸을 옆으로 길게 늘어 뜨려 다른 한쪽 팔로 바닥에 원을 그린다. 마치 컴퍼스 같기도 한 동작이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면서 그렇게 바닥에 원을 그리는 시늉을 하며 무대를 돌다가 들어간다.
본격적으로 음악이 시작되고, 무대 뒤 천막에 조명이 비치면서 희고 동그란 달 모양이 박히고 그 뒤로 돌고 있는 선풍기의 그림자가 보인다. 선풍기는 무대 뒤에서 조명을 받아 달 안에 검게 떠서 무대를 향해 열심히 돈다. 천 뒤로 조명이 살짝 켜질 때 무대 안이 보이는데 선풍기 몇 대가 천막을 바람으로 흔들고 있다.
곧 배우들이 2팀으로 나뉘어 등장한다. 한 팀은 무대 뒤쪽으로 등장해 뭐하나 싶은 작은 동작으로 안무를 시작하고, 다른 한 팀은 무대 앞쪽으로 등장해 무대에 야광의 작은 물체를 하나씩 줄에 맞추어 놓듯 배열하며 무대 뒤로 간다. 무대에 야광 물체가 ‘정갈하게’ 놓이면 ‘정갈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무용수들의 머리와 의상은 모두 비슷하다. 모두 우주복 같은 은색 소재의 민소매 목 티에 바지는 두 가지 스타일인데, 승마바지와 시골 할머니들의 일 바지스타일이다. 어디에 곡선이 있는가 하는 흐름에 따라 다른 라인으로 다른 느낌을 주지만 무대 위에서는 회색과 검은색으로 차이 날 뿐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는 골무 같은 수영 모자를 썼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가지런한 앞머리가 달렸다. 하얀 모자는 달 같기도 하다. 화장도 모두 같다. 하얀 밀가루 같은 피부색에 특별한 색조 없이 얼굴만 떠억 보인다. 같은 화장, 같은 머리의 18명의 무용수들은 어떻게 보면 하얗고 작은 달 같다.

 

섬세하고 미니멀한 형식 그러나 결국 지루하게 반복되는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단순하고 아주 조용하다. ‘강강술래’ 하듯이 무대를 뛰는 순간조차도 뭔가 정적이고 정돈된 느낌이다. 무용 전공자도 관련자도 아닌 필자로서 이것이 최근 유행하는 어떤 형식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것 같다. 전체적인 음악이나 분장이 주는 느낌은 ‘달과 놀이’.
음악은 전통 우리 음악에 클럽 음악 같은 느낌도 섞여 있고, 부분적으로 개구리 소리,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도 있다. 사물놀이 음악처럼 타악기와 가야금 등의 현악기 소리도 있다. 참 신기한 것은 다양한 듯 느껴지는데도 막상 들으면 비슷한 속도감과 박자, 리듬이 계속 되어서 좀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고, 무슨 최면에 걸린 듯한 느낌도 준다는 것이다.
안무들은 주로 강강술래처럼 뛰지 않으면 팔과 상체만을 써서 미니멀하게 움직인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각기 다른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참 쉽고 간단하게 보이는데 계속 반복해서 헷갈릴 수는 있을 듯하다. 그리고 안무들이 우리의 전통놀이의 동작이나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현한 느낌이었다. 손벽치기나 땅재먹기, 꼬리잡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등말이다. 하지만 계속 되는 반복, 여기서도 다시 오는 지루함.

 

돌멩이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무용수들이 춤을 추면서 등장하더니 규칙 없이 흩어져 있던 그들은 조금씩 작게 모이기 시작한다. 안무하듯 바닥에 돌멩이를 두었다가 주웠다가 다시 옮기면서 이동하는데 다 모이고 나니 동그랗고 하얀 조명 안에 들어가 있고, 바닥에 놓인 돌들은 언제 그렇게 놓였는지 모르는 사이, 하얀 조명 테두리에 놓여있다. 배우들이 마치 달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마지막은 서로 팔을 잡고 돌리며, 처음과 같은 컴퍼스 춤을 추는데 이번에는 손에 하얀 분필을 잡고 바닥에 실제로 흰 원을 그린다. 무대 가득 흰 원, 흰 달이 가득 찼다. 무용수들도 달, 바닥에도 달, 조명도 하얗고 단순하게 비친다. 마치 달에 와 있는 기분이다. 몽롱하고 멍하다.
그렇다. 몽롱하고 멍하다. 이 이 무용의 흐름은, 과정은 무한히 반복되어 하나로 향한다. 달이 놀다, 달에서 놀다, 달하고 놀다, 달처럼 놀다. 아쉬운 것은 동작이나 음악 등이 좀 단순하고 평이하다는 것. 이건이 연출가가 바란 형식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무용을 처음 접하거나 자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시간이 될 것도 같다.

사진제공 :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