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된 텍스트들, ‘전쟁의 소용돌이 속 사랑의 파국’

<펜테질레아> Review _ 김민관

무대에는 커다란 원이 새겨져 있다. 그 중간에는 사분의 일 크기의 두 개의 원이 맞닿으며 동시에 큰 원에 맞닿고 있다. 이 원을 돎으로써 원심력과 구심력의 팽팽한 긴장(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원 안으로 쏠리는 구심력이 더 강하다)과 에너지를 나타내는 한편 한 점에 머물지 않는 순환과 유동의 의미를 가시화한다. 그리고 이는 경계의 의미와 결국 똑같은 순환의 반복으로서 인생의 수레바퀴와도 같은 은유로도 읽힌다. 무엇보다 아킬레스로 대변되는 그리스 군과 펜테질레아로 대변되는 아마존 군 간의 전쟁과 충돌의 관계 속에 어긋나는 사랑과 욕망의 층위를 크게 상정한다.

 

모두가 추락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버티고 있는 아치의 문의 상징은 결국 삶은 추락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펜테질레아의 부족의 명예 아래 상정되는 사랑의 금기와 사랑의 쟁취 간 미끄러지는 욕망은 요동하며 광증으로 치닫는다.

 

전사적 투지와 같이, 불타는 사랑의 갈망과 같이 그녀의 의식(무의식)은 원을 벗어나며 하강을 서슴지 않는다. 펜테질레아의 사랑의 금기와 결합될 수 없는 이질성의 존재와의 사랑(의 금기)은 곧 현실을 뛰어넘는 도약의 지향들을 만들지만, 여기서 현실 곧 금기라는 언어(상징계)가 펼쳐 놓은 세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곧 하강은 이 세계를 점프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의식적 지향 가운데 필시 망각하지만 결국 따라붙는 현실의 늪을 포함한다.

펜테질레아는 여러 명으로 분화되어 표현된다. 펜테질레아라는 역을 만드는 대신 그 말을 전달하는(말들이 자리를 잡는) 매개체로서 배우들은 존재하는데, 한 명의 역할이 동일성의 흐름상에서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닌 차이의 역동적인 분배가 펜테질레아라는 존재를 구성한다는 지점은 이 작품이 텍스트의 조각들이 떠돌며(언어는 계속해서 치환되며 한편 그 떠도는 말들로 서술되며) 명징한 내러티브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과 연관된다.

피아노의 공명 장치가 기능하는 대신 노이즈 사운드를 만드는 것으로 증폭되어 변용된 장치로서 작용하고 있고, 연주되지 않음에도 넘어가는 악보는 이 작품이 텍스트와 퍼포먼스의 수행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악보를 형성하며 연주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킬레스의 죽음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후 펜테질레아 자신이 그를 죽였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으로 절규한다. 그리고 수행적 언어의 단도로 자신을 찌른다. 아킬레스가 없는, 사랑의 존재가 없는 세계의 빈곤 상태에서 그는 애도의 깊이가 자아의 빈곤으로 이어지기 전에 자신의 강력함으로 비장한 죽음의 사태로 하강한다. 어쩌면 이는 스스로에 대한 애도일 수도 있겠다.

출처: http://artscene.co.kr/972